이미 이루어졌다

나는 어렸을 때 누구나 예술을 하는 사회가 오리라 믿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가지 코드의 동영상/사진/음악을 조금씩 변형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예술 행위가 유행했다. '빠삐놈', '하츠네 미쿠'로 만들어진 음악, '니코니코 조곡'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원형이 되는 작품에서 약간 고쳐 자신의 버전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 중에는 매우 훌륭하여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은 것도 나타났고 수천 수만회 재생되었다. 인터넷 예술로 유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늘어나자 경쟁이 일어났다.

유행이나 코드를 소재로 쓰지 않는 독창적인 작가들도 있었지만 무시당했다. 그래서 '동방 프로젝트' 관련 그림이 유행인 어떤 만화 그림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 '동방' 그림을 그리라고 강제한 것도 아닌데도 '동방'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melt 등의 유명곡을 부르지 않으면 재생될 기회가 없어, 노래를 잘해도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었다. 즉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관심받기 쉽지 않았다.
 
유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퇴하고 새로운 유행이 나타났다. 계속 따라잡지 않으면 기존에 알려진 작가도 명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새로운 유행이나 코드는 보통 2~3개월마다 바뀌었다. 그 결과 상당한 완성도를 갖는 작품이 몇 개씩이나 2~3개월마다 탄생했다. 즉 생산자가 소비자가 동일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참여자가 경쟁하는, 예술 생태계가 탄생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놀랄만큼 생산적이라 많은 멋진 작품들이 나타났다.
 
아마도 이 생태계에서 유행은, 공작의 꼬리처럼 적응도를 나타내는 심벌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유전적 적응도를 나타낼 수 있는 지표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예컨데 공작의 꼬리대신 눈썹이나 첫번째 엄지 발톱은 왜 암컷에게 주목받지 못하는가? 지표의 종류가 늘어날수록 성선택 게임에 참가자가 지불해야 하는 계산 비용이 증가하여 게임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독창적 형태의 예술은 이 생태계에서 공작의 눈썹처럼, 발달해봐야 주목되지 않았다. 오직 꼬리만 보상받은 것이다.

작가에게 금전적인, 물질적인 보상이 있는 것은 아니였고, 오직 허망한 네트워크상의 명성만이 주어진 것은 주목할만하다. 소비자이자 작가인 그들은 자조적으로 자신들을 '잉여'라고 부르며 예술 활동에 들어간 재능과 시간을 '잉여력'이라고 불렀다.

IT 기술의 발달과, 재능있는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라고 쓰고 실업이라고 읽는다.)으로
꿈은 내가 꿈꾸었던 것보다 더욱 살아 움직이는 현실로 나타났다.
잉여의 세상은 이미 이루어졌다.

by 황소 | 2009/12/08 02:49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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